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치원/지역별 현황/수도권 (문단 편집) === [[고양시]] === 1965년 [[천주교 의정부교구]] 일산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 마리아|성모]]유치원이 최초로, 고양시가 아직 고양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과거 군청 소재지이던 원당읍에서 설립되었고 시 승격 후에도 한동안 그 위치를 유지하다가 2000년 [[덕양구]] (분구 이후에는 [[덕양북구]])에서 [[일산서구]] 일산동으로 이전했다. 유치원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덕양구 분구 이후 덕양남구가 되는 신도읍, 화전읍에 살았던 아이들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이런 형태의 유치원 원정 통학은 [[구리시|양주군 구리면→구리읍]], [[광명시|시흥군 서면→소하읍]]에서도 볼 수 있었다. 물론 [[고촌읍|김포군 고촌면]], [[계양구|김포군 계양면]], [[과천시|시흥군 과천면]], [[하남시|광주군 동부면→동부읍/서부면]], [[별내면|양주군→남양주군 별내면]], [[성남시|광주군 대왕면/중부면]]도 서울에 접하기는 했지만, 이들 지역에서는 서울로 향하는 교통편이 부실해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잘 없었다. 특히 지금의 성남시인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는 철거민들이 많이 이주해서 그렇다. 소수의 고양군 중면, 지도면 주민들도 [[경의선]] 열차 등을 이용해 원정 통학을 시켰고, 고양군 벽제면의 경우는 [[교외선]]의 영향으로 의정부로 가는 원정 통학이 많은 편.] 성모유치원 최초의 원생은 [[1959년]]~[[1961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현재는 [age(1959-12-31)]~[age(1959-01-01)]세이다. 당시 원생들은 고양시 원당동, 원흥동, 주교동 일대에서 살았다고 한다. 고양군 시절에는 주로 군청이 있던 원당읍 혹은 인구가 밀집한 신도읍 지역을 중심으로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화전읍[* 신도읍에서 분리되었고, 구역은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덕동이다.], 벽제읍, 일산읍, 지도읍[* 신안군 지도읍과는 음만 같을 뿐 한자 표기는 다르다. 신안군 지도읍은 智島邑, 고양군 지도읍은 知道邑이다. 인구도 옛 고양군 지도읍이 더 많다.] 등이 설립되고 시로 승격되면서 본격적인 사립유치원 설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양군 당시에는 시골이었다가 고양시 승격 이후에야 겨우 시가지 개발이 시작된 [[일산신도시]] 지역에는 198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 [[일산동구]]: 1981년 이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고양군 일산읍.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age(1975-12-31)]~[age(1975-01-01)]세이다. * [[일산서구]]: 1981년 송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고양군 송포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age(1975-12-31)]~[age(1975-01-01)]세이다. * [[덕양구]] (미래의 덕양남구, 대부분의 [[고양시 을]] 선거구 지역): 1981년 삼송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고양군 신도읍.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age(1975-12-31)]~[age(1975-01-01)]세이다. 또한 국내 최초의 유치원인 이화유치원([[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유치원)이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잠시 고양군 산하였던 적이 있었다. (당시 신촌 일대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이 시기 원생은 현재 사망했거나, 생존해 있더라도 80대를 넘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들은 1914~1935년생인데, 현재 이들은 [age(1935-12-31)]~[age(1914-01-01)]세이다. 김수영과 [[이순재]]가 대표적이다.] 어르신들이다. 여담으로 [[깜놀 유치원]]을 촬영한 이튼유치원이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 있다. 사립유치원은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데[* 2위인 [[수원시]]를 5곳 차로 제쳤다.] 111곳이나 있다. 이는 일반시들 중 가장 많은 것이며, [[접경지역특별법]]에 의한 접경지역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다. (2위 수원이 106곳, 3위 창원이 101곳. 이 3곳을 제외하면 사립유치원 개수가 100곳을 넘는 곳이 없다. 특별시와 광역시도 여러 개의 자치구를 합쳐야 겨우 100곳이 넘는 지역이 나올 정도.) 고양시 일산서구는 [[파주시]]와 아주 가까워, 파주의 유치원 버스가 일산으로 오거나, 일산의 유치원 버스가 파주로 가기도 한다. 반면, 덕양구 서부에서는 서울로 많이 가는 편이다. 고양군 시절에는 [[여름]]만 되면 [[홍수]]로 인한 휴원이 잦았으나[* 당시 수도권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서울만 해도 [[강동구]] [[성내동(강동구)|성내동]], [[천호동]]과 [[송파구]] [[풍납동]]에서 이런 경우가 매우 잦았고, 특히 풍납동은 이런 침수 때문에 '''물납동'''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게 되었다.], 현재는 홍수보다 황사나 전염병에 의한 휴원이 더 많아졌다. [[아파트]]가 많은 지역 특성상, 아파트 단지 하나에 유치원이 2곳 이상 있는 경우도 있다. 인구가 1960년대의 9만 3,741명에서 107만 9,216명으로 급증해서[* [[덕양구]] 47만 6,962명 (43.7%), [[일산동구]] 29만 9,715명 (27.9%), [[일산서구]] 30만 2,538명 (28.5%). 분구까지 상정한 경우 [[덕양북구]] 24만 8,842명 (23.2%), [[덕양남구]] 22만 829명 (20.6%), [[일산동구]] 29만 8,445명 (27.9%), [[일산서구]] 30만 2,886명 (28.5%)가 된다. 1960년대 신도면 2만 6,065명, 원당면 1만 1,341명, 지도면 1만 2,947명, 벽제면 1만 4,957명, 중면 1만 6,230명, 송포면 1만 2,186명으로 지금의 덕양구 (분구 이후 덕양북구+덕양남구) 지역에 6만 5,310명, 일산동구 지역에 1만 6,230명, 일산서구 지역에 1만 2,186명이 살았던 것에 비하면 일산지구의 성장이 엄청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옛 읍면으로 현재 인구를 계산하면 신도읍 (창릉동, 삼송동, 효자동) 5만 5,820명, 화전읍 (대덕동, 화전동) 2만 9,377명, 지도읍 (화정동, 능곡동, 행주동, 행신동) 20만 6,926명, 원당읍 (원신동, 주교동, 성사동, 흥도동, 식사동) 15만 2,777명, 벽제읍 (고양동, 관산동, 고봉동) 9만 246명, 일산읍 (장항동, 정발산동, 마두동, 백석동, 중산동, 풍산동, 탄현동, 일산동, 주엽동) 43만 2,999명, 송포면 (대화동, 송포동, 송산동) 11만 371명이다. 2019년에는 '''[[용인시]]에 뒤처진 적이 있었고 지금도 엎치락뒤치락하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덕양구를 [[덕양북구]], [[덕양남구]]로 분구할 계획도 있다. 분구된다면 [[덕양북구]]의 인구는 24만 8,842명, [[덕양남구]]의 인구는 22만 829명이 된다. 대략 옛 지도읍, 벽제읍, 원당읍은 덕양북구, 신도읍과 화전읍은 덕양남구가 된다. 만약 진관동이 고양시 관할이었다면 고양시 인구는 113만 6,238명으로 늘고 진관동은 덕양구 (인구 53만 3,948명)에 편제되고, 분구 시 덕양남구 (인구 27만 7,851명)에 편제될 예정이다.] 사립유치원이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숫자도 많아서 9,587명당 사립유치원이 하나씩 있다. 다만,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창릉신도시]]에 설립되는 모든 유치원은 공립으로 운영된다. 과거에는 [[고양시]]의 유치원생 대부분이 [[장교]]나 [[부사관]]의 자녀였으나, 인구 급증으로 [[전방]] 이미지가 희석되면서 학부모의 직업이 다양해졌다. 또한 고양시의 지리적 특성상 고양시의 유치원에서는 [[서오릉]]이나 [[일산호수공원]]으로 소풍을 많이 가며, 멀리 가면 [[서울]]의 [[경복궁]]으로 가기도 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고양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강, 윤, 장, 한씨 순서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전소민]][* 전소민은 [[1986년]] [[4월 7일]]생([age(1986-04-07)]세)이라 1990~199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정황상 병설유치원이나 좀 오래 된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그야말로 전소민은 [[판유걸]]이 유치원을 다닐 시기에 태어난 셈.]과 야구선수 [[김강률]][* 김강률은 [[1988년]] [[8월 28일]]생([age(1992-08-28)]세)이라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8년생들은 고양시 승격 직후에 유치원을 다닌 셈이며 정황상 좀 오래된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연극배우 [[판유걸]][* 판유걸은 [[1982년]] [[11월 20일]]생([age(1982-11-20)]세)이므로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판유걸을 비롯한 1982년생들은 [[1986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원 시절에 봤는데, 해당 대회들이 각각 [[1986년]] [[9월 20일]]~[[10월 5일]], [[1988년]] [[9월 17일]]~[[10월 2일]] 사이에 열렸으므로 해당 기간에는 유치원들이 단축수업을 했다. (해당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각각 1990~1992년,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생이었다.) 참고로 판유걸이 유치원을 다닐 당시 고양시는 고양군이었고, 산하에 신도읍, 화전읍, 벽제읍, 원당읍, 지도읍, 일산읍, 송포면이 있었고, 정황상 병설유치원이나 좀 오래 된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판씨]]가 인구 300명도 안 되는 매우 희귀한 성씨이기 때문에 판유걸의 유치원 시절 친구들은 유치원에서 ‘판’씨라는 성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셈이다. --사실 이건 판씨만이 아니라 희귀한 성씨를 가진 사람은 유치원 친구들이 자신의 성을 처음으로 들어 보게 되는 것이다--]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